돌이켜보면, 20여년의 사회생활동안 제가 힘써 해온 일들은 제법 범위가 넓고 다양한 편입니다. 연구소에서 새로운 반도체 칩을 개발하기 위해 일했고, 회사를 옮겨 다니며, 국내 영업, 해외 영업, 마케팅 등등의 일들을 해왔으니, 비교적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로 제 경력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좀 장황하게 설명하곤 했습니다. 나름 자부심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전체 경력을 하나의 영역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업 개발’이라는 분야입니다. 연구소에서 한참 새로운 칩을 개발하고, 세계 여러 지역을 돌아 다니며 영업과 마케팅 일을 한 것도 크게 보면, 모두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계획을 가지고 된 것은 아닙니다만, 뒤돌아 보니 이렇게 정리 할 수 있었습니다. 기존에 없던 사업이나 제품을 개발하여 고객들의 구매 의욕을 일으키는 일이다보니, 사실, 성공보다는 실패의 사례가 더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건설적인 실패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순간순간은 상당히 괴롭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제 개인의 경험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고, 사업 개발, 영어로 ‘Business Development’ 줄여서 BD라고 하는 일은 무엇이고, 기존 대기업 혹은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의 조직 내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지 살펴 보겠습니다.
BD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BD 매니저, 혹은 BD team의 목표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기존 조직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사업이나 제품을 개발하여 매출 규모를 확대하는 것입니다. 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기업 조직들은 신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모든 제품과 사업은 시장에서 나름의 수명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거든요.. 이상적인 경우에 한 제품이 몇 십년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기도 하지만, 이런 사례는 거의 찾아 보기 힘듭니다. 신사업을 설계한다는 것은 기존 사업의 시장 경쟁력 약화를 대비하여 미래의 리스크를 줄여 나간다는 의미가 제일 큽니다. 현재 사업의 경쟁력이 월등하고 이런 점이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해도, 신사업은 필요합니다. 매출을 늘리고 사업을 다각화해야 기업의 가치가 상승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BD는 어느 조직에나 있는 특별할 것이 없는 팀입니다.
이렇게 어느 조직에나 있는 BD의 역할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 것은 전통적인 업무 구분과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조직도를 보면, 영업, 마케팅, 홍보, 생산, 연구 개발, 관리.. 등의 역할이 나누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규모만 다를 뿐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큰 차이는 없는데요, 군대에서 유래한 이런 조직 구성이 여전히 유효한 것은 효용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BD는 이런 업무 규정에 정확히 들어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역할에 대해 약간의 혼돈이 있는 것 같습니다.
BD 전담 조직이 있고, 이 조직의 책임자가 임원급이면, 그 역할의 담당자를 Chief Business Development Office, CBDO 라고 부르게 됩니다. 만약 어떤 조직이 CBDO를 외부에서 채용한다면, 업무 기술서에 뭐라고 쓸까요? 역할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설명이 될 수 있어서 대표적인 몇 가지만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리 조직의 역량을 파악하고, 기존 사업 환경과 분석해야 합니다. 기존 제품의 경쟁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새로운 사업 개발 방향을 설계합니다. TV 모니터에 들어가는 기능성 필름 제작 업체가 스마트폰 필름 시장으로 사업을 개발하기로 했다면, 우리의 제품 경쟁력에 높은 점수를 준 경우일 것입니다. 만약 이 업체가 저가의 과자 봉지 시장에 진입할 계획을 세웠다면, 생산 원가 경쟁력에 자신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역량에 비추어 사업 개발을 설계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업무입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역량만으로는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판단이 되면, 역량을 외부에서 받아들여야 하는데, 짧은 시간안에 성과를 내고 싶으면 다른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전략을 세울 수 있습니다. 시간에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전문가들을 채용하여 제품 개발을 맡길 수 있겠지요.. 이렇게, CBDO는 인수합병과 자체 성장에 관한 전략적 판단을 하고,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략을 세웠으면 실행을 해야지요.. 인력과 자원을 배분하고, 기대 성과를 설정하여 원활하고 공정하게 실행해야 합니다. 최근에는 장/단기 로드맵을 작성하여 이런 일들을 해나가는 데요.. CBDO는 로드맵의 작성과 실행을 관리해야 합니다.
이행 과정에서 조직 내/외부의 이해관계자들과 다양한 협업이 필요하고, 이런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CBDO는 이런 부분들을 원활하게 관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채용 면접에서 가장 많이 질문받고, 관련 경험과 사례를 듣고 싶어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여러 역량 중에서 마케팅 전략 수립 능력이 핵심입니다. 실제로, CBDO의 경력을 보면, 마케팅에서 주목할 만한 경력을 쌓은 경우가 제일 많습니다. 우리의 역량과 시장의 접점을 찾고, 제품을 설계하여 고객을 설득하는 역량은 언제 어디서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스타트업이라면,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역량도 필요합니다. 투자자들은 제품이 멋있어서 투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투자합니다. 두 명의 친구가 등산 중에 곰을 만나 쫓기는 상황이 있다고 합니다. 한 친구는 정신없이 도망가는 데, 다른 친구가 갑자기 신발끈을 꽉 조입니다. 먼저 달리는 친구가 의아해아지요… 빨리 달려도 곰을 이기기 어려운데, 여유를 부리는 것 같거든요.. 그러나, 이 친구는 태연히 말합니다. 내 목표는 곰보다 빨리 달리는 것이 아닌, 너보다 빨리 달리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여러 곳에서 자주 인용되는 우화입니다만, 제 관점에서 시장에서의 경쟁 상황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신기록에 도전하느라 시간과 자원을 허비하면 안됩니다. 경쟁사보다 1cm 빨리 달리는 것을 목표로 민첩한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쉽게 표현했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지요… 제 경험으로도 실패한 사업 개발 사례의 대부분은 이 지점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 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외부 투자자들이 궁극적으로 알고 싶어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 대해 가장 확실한 좌표를 제시하는 것이 CBDO의 역할입니다.
이상은 BD의 최고 책임자인 CBDO에 대해 살펴봤습니다만, BD team의 직원들의 역할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일들의 일부 혹은 전체를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BD를 하려면 어떤 경력과 역량이 필요할까요?
위에서 설명한 부분과 일부 겹칩니다만, 기본적으로 BD 담당자들은 경력의 깊이와 넓이를 다 요구받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그 만큼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선호하고, 연봉도 비교적 높습니다.
학력 수준: high-tech 사업일 수록 이공대의 석사 이상 학력과 연구소 경력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여기에 MBA를 이수하면 바람직합니다. 학력으로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경력 사항: 사업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거나, 인수합병 경험이 있으면 업무 수행에 도움이 됩니다. 로드맵을 작성하며 장기간 프로젝트를 꾸려나간 경험이 있으면 일단 밑고 맡겨 볼 만합니다. 그 외, 한 부서에서만 일한 것이 아닌, 여러 부서를 거치면서 경력을 쌓았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소통 능력: 매우 중요하고, 갈수록 비중이 커지고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BD는 조직의 내/외부 이해관계자들과 계속 협업하고 설득해야합니다. 외곬수나 독불장군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능력과 관계없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사업 환경이 변화고 복잡해 지면서, 매너있고, 설득력있게 대화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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