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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전병옥

Stage-Gate에 대한 딴지



2000년 이후 제법 이름있는 회사들은 사업 개발 프로세스를 위해 Stage-Gate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회사에 따라 다양한 변형 모델이 개발되어 기업내에서 부르는 이름은 각양각색이 되었지만, 근본 뼈대는 Stage-Gate process를 거의 그대로 차용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보시지요..


새로운 사업이 곧 공장에 대한 투자, 즉 생산시설 확충으로 여겨지던 시절, 대규모 투자에 대한 결정을 여러 차례 나누어 하자는 아이디어가 제기되었습니다. 1980년대의 일이지만, 사실 그다지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었습니다. 기록상으로도 1940년대에 비슷한 방법이 제기되었고, 그 이전에도 여러 분야에 동일한 방법론의 필요성이 있어 왔습니다. 배경은 투자 위험 회피입니다. 큰 돈에 대한 투자는 신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화학 산업뿐만 아니지요... 대규모 유전 개발부터 첨단 과학기술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에 이르기까지 위험을 회피하고 관리하는 방법은 계속 개발되었습니다. 심지어 미국우주항공국(NASA)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진행상황을 점검할 단계를 두어 이를 프로세스로 정립하여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눈여겨 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캐나다 McMaster 대학의 Robert G. Cooper교수는 제품 개발 방법론에 대해 연구하였는데, 여러 분야에서 개발되었던 개념들과 실행 방법을 모아보니, 핵심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사업 개발 프로세스로 정립하였습니다. 1986년에 첫 논문이 나온 이후, 2008년에 일부 내용을 수정하여 다시 발표했으니, 꽤 오랜 기간 검증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사이 상도 여러번 받았고, 컨설팅 회사를 설립하여 사업도 제법 잘 되었습니다.



프로세스의 기본 골격은 위의 그림과 같습니다. 사업 개발에 있어서 큰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다면, 의사 결정을 몇 단계에 나누어 봅니다. 위의 그림처럼, 이 과정을 stage 1부터 5까지 단계를 나눌 수 있다. 각 단계의 사이엔 gate-keeper를 선정하여 프로젝트가 각 단계에서 요구하는 요건을 충족하였는지 결정합니다. 충족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아니면 시간을 좀 더 주거나 내용을 수정해야 합니다. 심하게 지지부진한 경우 그 프로젝트를 폐기하기도 합니다 (Go / Kill / Hold / Recycle). 이와 같은 일들이 프로젝트 수행 내내 이루어져야 하므로, 때로는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전문가가 필요하기도 하고, gate-keeper의 선정도 신중해야 합니다.


Cooper 교수가 내용을 발표하자 마자, 여러 산업 분야에서 적극적인 관심을 표현했습니다. 처음 보는 개념이 아닐뿐더러, 실행 방법도 비교적 잘 정립되어 있어서 기업들 입장에서는 거부감이 크지 않았을 것입니다. 특히, 화학 산업과는 궁합이 잘 맞았는데, 화학 산업의 프로젝트가 기본적으로 큰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최근에 사람들이 이 프로세스를 외면(?)하는 이유가 뭘까? CEB (of Gartner)가 주요 기업의 R&D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2017년), 거의 모든 관리자들이 Stage Gate process에 대한 피로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Stage Gate process는 한 방향으로만 정렬되어 있어서, 외부 상황 변동에 대한 탄력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민첩하지 못 하고, 내부의 관계자들에게만 초점을 맞추어 폐쇄적일 때가 있다. 결과적으로 비용과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고, 프로젝트가 길고 지루해지기 쉽다. 무엇보다, 이 프로세스는 각 단계를 거치면서 의사 결정의 불확실성을 걷어 내는 것이 중요한데, 별로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2. 그럼에도 이 프로세스는 매우 합리적인 면이 있다. 합리적이면서 실용적이지 못 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조직을 관료적이라 부르는데, 실제로 한 마케팅 책임자는 이 프로세스를 최고 책임자만 좋아하는 지극히 관료적인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3. 물론, 반론도 있다. 위의 불평들은 말 그대로 오해라는 것이다. Cooper교수의 표현에 의하면, '그건 너희들이 잘 몰라서 그렇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2008년에 이와 같은 불평에 대해 일종의 반박 논문을 발표한다. 이 논문은 여러모로 좀 특이한데, 비판에 대한 자기 방어라기 보다는 은근 슬쩍 내용을 일부 수정해서 무마하려 한다 (내가 받은 인상이 그렇다). Cooper 교수의 수정 내용은 아래 그림에 잘 나타나 있다. 쉽게 말해서, 일부 과정을 통합하거나 제거해서 간결하게 만들라는 것이다. 내가 몸 담았던 회사도 Fast track process를 도입하여 신속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는 프로젝트를 선정하곤 했다. 물론, fast track에 선정되기 위해 길고 지루한 회의가 반복되긴 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법이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최근에는 agile & digital stage gate가 주목받고 있는데, 역시 별로 의구심이 많습니다. 민첩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있기 때문인데요... 사실, stage gate process의 탄생 배경을 보면, 이와 같은 의구심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방법론은 새로운 우주 왕복선의 개발이나 대규모 화학 공장을 짓기 위한 프로젝트를 위해 고안된 것입니다. 고객 개발이나 신제품 출시와 같은 탄력적인 일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전사적인 로드맵(3~5년이 걸리는)의 작성과정과 내용과 형식이 비슷합니다. 따라서, 대규모 사업 개발이나 M&A와 같은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것이라면, 이 방법은 여전히 매우 유용할 것입니다. 반면, 고객의 급한 요구를 위한 프로젝트에 이 방법론을 쓰는 것은 코끼리에게 표범처럼 달리라고 요구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코끼리도 힘들고, 조련사도 힘들고, 성과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짧은 시간에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업 (제품) 개발을 위한 방법론이 최근에는 더 주목받고 있습니다. 여러 방법론들이 제기 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에 소개했던 ‘Lean Startup process’가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프로세스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Reference

  1. Cooper, Robert G. (1986), Winning at new products, Addison-wesley

  2. CEB survey, 2007

  3. Cooper, Robert G. (2008), Perspective: The Stage-Gate Idea-to-Launch process - Update. What’s new and next Gen. syst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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